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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4화

다음 날, 해가 잠이든 저녁. 여기는 큰 레스토랑. 지금 그곳은 시험을 마치고 모두가 그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해 급하게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 고되고 미련스러운 후유증을 전부 메꾸기 위한다는 본능 때문인지 가격을 보지 않고 다짜고짜 주문하여 배를 채울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주문한 음식을 허겁지겁 해치우는 굶주린 학생들에 비해 유족 창문 옆에서 조용하고 안락하게 식사하고 있는 어느 한 테이블이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학교와 병원에 있었던 일을 서로 유쾌히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느 한쪽은 환자들이 간호사 몰래 도박을 하다 걸려 360계 줄행랑 피우다 그만 계단에 넘어져 몸 전체에 깁스를 하게 된 일이나 또 학교에서 과학 실험을 하다 실수로 잘못 혼합되는 바람에 그만 폭발이 일어나 하마터면 실험실에 불이 나버린 뻔한 일도 아낌없이 전부 꺼내고 있었다.

 

~ 몸 전체에 깁스를 할 정도면 얼마나 심하게 넘어진 거예요, 샌즈 형? .... 진짜 아프겠다.”

 

그렇게 계속 그렇지 말라고 얘기했는데도 귀담아듣지 않을 대가를 치른 거지. 덕분에 몸이 망가지고 또 우리들은 귀찮게 치료하느라 진땀을 뺐고. 다음부터는 머리에 박힐 정도로 잔소리를 하기로 마음먹었어. 여기 내 옆에 있는 잘생긴 파피루스처럼 말이야.”

 

씰룩 웃어대며 제 옆에 앉은 신입 경찰인 동생을 바라보았다. 형이 자신을 언급하니 동생은 슬쩍 고개를 들어 자랑했다.

 

녜헤헤! 이 위대하신 몸은 잔소리는 한번 끝내주지! 남들이 움직이게 못하던 우리 형을 내 말 한마디면..... 샌즈, 지금 날 놀리는 거지!!”

 

칭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형제의 장난이었음을 금방 눈치채 화를 내는 파피루스는 금방 그에게 달려들어 투닥거리니 이를 지켜보던 두 모자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그러다 엄마 몰래 식당 안에 있는 시계를 보며 확인하는 아스리엘은 슬그머니 다른 생각을 품고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집에서 얌전히 쉬고 있을까? 아니면 가 다른 곳으로 이감될 때 몰래 따라가지 않았을지 걱정을 품었다. 자신도 역시 가 오늘 저녁에 다른 병원으로 이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한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제 친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가설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원 버스가 멈출 때를 노려 몰래 들어가 를 죽일지, 아니면 그저 집에서 가만히 있을지를 말이다. 하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분명 그는 를 만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아직 어린 자식에게 생존과 싸움을 가르쳐 모든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게 교육할 정도로 큰 상처를 지닌 그가 과연 가만히 있을지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누구라도 다 알 것이다.

 

아스리엘은 당장이라도 걱정되는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하필 오늘 저녁 약속에 아직은 그와 합치기 조금 모호한 엄마까지 있어 불가능했다. 그나마 오늘 다 친모와 그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 약속임을 전부터 알고 있기에 어쩌면 에게 가지 않고 이곳에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었다.

 

제발 아무런 일이 없으셔야 하는데....’

 

즐거움 반, 걱정 반. 지금의 분위기에 제대로 집중 못 하고 어색한 대화와 웃음을 지으며 시간을 보내던 갑자기.

 

다들.... 여기 있었구려.....”

 

낯설지만 그럼에도 익숙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모두의 옆에 들려오자마자 흠칫하며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피곤한 눈빛의 그가 서 있었다.

 

당신....”

 

아빠.”

 

모두 다른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내며 그를 반기니, 아스고어는 잠깐의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일을 마치고 들어가려다 창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래 인사라도 나누려고 왔는데....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닌지?”

 

다행히 제가 생각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분명 자신이 말했던 약속 장소로 향해 갔음을 짐작한 아스리엘은 그대로 밝게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아니에요, 아빠. 여기서 얼굴을 보시니 너무 반가운 거요. 저녁 아직 안 드셨죠?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식사하고 가시지 않을래요. 아빠? 엄마도 괜찮죠?”

 

아들의 제안으로 잠깐은 놀랐지만 금방 이성을 찾고 곰세 고민에 빠지다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구했다.

 

고마워요, 엄마. 아빠도 어서 앉으셔야 하니깐 의자를.... 아니, 제가 자리를 비킬 테니 여기 아빠가 앉으세요. 제 의자는 제가 새로 가져올게요.”

 

아니, 아스리엘.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잠시 손 좀 씻으러 갈 겸 가져오는 건데요 뭐. 괜찮으니깐, 편히 앉으세요.”

 

미소를 지으며 빛보다 빠르게 자리에서 떠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들을 보며 잠시 정적을 갖춘 부부와 친구들. 무거운 어색함에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대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있다, 아들의 친모 토리엘은 헛기침을 내며 그를 앉게 하려 했다.

 

!... 아스고어, 그렇게 서 있으면 식사를 못 하니깐 어서 앉으세요. 이따 종업원한테 메뉴를 추가할 테니 뭐 먹을지 말해주세요.”

 

아내의 호의에 아스고어는 금방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가져갔다. 그는 아직 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알겠소. 어색할 텐데 받아줘서 고맙소.”

 

아니에요. 오래간만에 식사하는 것도 괜찮잖아요. 안 그래요?”

 

반가움에 안타까움도 있지만 다른 무언가도 빛나는 것을 눈에서 본 아스고어는 금방 미안한 마음을 품어 조용히 메뉴판을 흩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뭐 먹을지를 생각 못 해 이리저리 해메고 있던 그를 보고 직접 몸을 움직여 추천 메뉴를 알려주려는 토리엘.

 

여기 이 메뉴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요. 이거 한 번 먹어보는 건....?”

 

그에게 가까워질 때 코에서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찌릿하게 입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매번 환자에게 주사를 놓기 전에 바르는 약품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그런 냄새. 그것이 무엇인지 느낀 그녀는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 술 마셨어요?”

 

그의 몸에서 나오는 냄새가 바로 술 냄새임을 파악한 토리엘은 곧바로 그를 쳐다보며 추궁했다. 그녀의 빠른 변화에 놀란 아스고어는 곧장 당황한 눈빛을 내세우며 일단 진정하라는 뜻으로 두 손을 들었다.

 

아니.... 일단 마시긴 했지만,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니 그렇게 신경을 안 써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 술에 입을 대며 어떡해요! 나중에 후유증을 어떻게 하려고!?”

 

아내의 엄한 걱정심은 식당을 가득 채우던 웃음소리와 맞먹을 정도로 강해 모두의 시선을 받아내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을 그리 오래가지 않고 다시 자신들의 본능에 집중해버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남편을 엄격히 대했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환자가 술 먹으면 안 되는 건데 왜 그걸 마시는 거예요! 진짜 당신은 스스로 고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정말?!”

 

아내의 따끔한 추궁에 아스고어는 잠시 주춤거리며 천천히 눈빛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가라앉아 풀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만 해도 멀쩡해 보였던 그의 손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그녀는 당황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뻘쭘히 있다 귀에 아스고어의 목소리가 천천히 입장하는 것을 느꼈다.

 

변명같지만.... 마실 수... 마실 수밖에 없었소..... ‘’... ‘가 내 앞에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마실.. 수밖에 없었소. 마시지 않.. 고서야.... 몸이 진정할 수 없어서....”

 

남편의 말에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눈 껌벅거리며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가 말한 라면 설마 제가 생각하는 가 맞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라면.... 설마?”

 

그렇소... 난 방금 를 보고 온 길이요..... ... 내 손으로 직접 죽이기 위해..... 난 그가 이송된 버스를 뒤따라갔었소.”

 

아스고어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 앞에 있는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가져와 입에 부었다. 차가운 물이 하얀 이를 자극해 찌릿한 느낌과 채우고 채워 이젠 흘러넘치고 있음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까짓것 물이 좀 흘린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니니.

 

그가 있던 병원 근처에 숨죽이고 있다, ..... 버스에 올라타는 거 보고 나서 움직였소. 기회가 생긴다면 당장 버스 안에 들어가 그 의 머리와.... 눈 그리고 심장에 총알을 박아 버릴 생각이었으니. 그리고 하늘이 내게 자비를 베풀려고 하는지 정말로 기회가 생겼소. 버스 운전사가 잠시 고속도로 주유소에 들어가 볼일을 본 틈을 타 바로 달려 들어가려고 했는데....”

 

더듬지 않고 빠르게 얘기해도 모두가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박똑박 말을 꺼내는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토리엘은 그를 말리고 싶었다.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눈빛이 점점 죽어가고 추위에 타는 듯 몸이 떨리고 있음을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스고어...”

 

하지만 난 그걸 해내지 못했소.... 차에서 내려 바로 버스에 달려가는 순간에 웬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소.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두 어린 형제가 어미에게 달려가 군것질거리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더군. 어미는 천천히 달래면서 아이들을 달래는 그 모습을 보더니 내가... 내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나버렸소. 더구나 만일의 생각도 떠오르고 말았소. 만약 내가 그 놈을 죽이려고 할 때에 놈이 반격해서 나를 역으로 죽이고 버스에 나온다면.... 놈이 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아이들이.... 그 부모가....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스고어는 그 아름다운 찰나를 다시 떠오르며 식겁하였다. 나 하나의 복수로 그리고 그것이 실패해버린다면 그 아이들은 꿈을 꾸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테고 부모 역시 아이들과 좋고 나쁜 추억도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깨달음에 그는 서서히 몸이 부서지려는 것 같이 떨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쓰디쓴 눈물과 몸속의 공기를 게워내는 것 같은 거친 호흡이 나오고 있었다.

 

“‘을 죽이고 싶었는데..... 의 목숨을 끝내고 싶었는데.... 그 아이들.... 나 하나 때문에 그 아이들이 다치게 된다면... ... 나 절대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소. 내 복수로 인해 한 가족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소. 토리엘, 나 너무 무서웠소. 나와 같은 이가 생기는 게 너무 무서웠소... 무서웠소.... 무서워....”

 

그날에 대한 죄책감에 자신의 괴리에 그만 이성을 잃은 그는 그대로 통곡하기 시작해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밝은 식당이 어둡게 변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지금 모두가 꺼내는 기쁨은 30년이 묽은 슬픔과 고통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밝은 색으로 칠해진 바깥조차도 곧 칙칙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통곡하는 그를 보며 진정시키고자 노력하는 토리엘와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이제 의자를 가지고 오려다 당최 갑자기 변한 분위기를 보고 놀란 아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그 상처를 메꾸고자 시간을 보냈다.

 

 

 

 

한참 즐겁게 보내고 있었던 저녁 시간이 엉망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그 누구도 전혀 개념치 않고 상처투성이의 사내를 돌보고 있었다. 아들은 편의점에서 차가운 물을 가져와 도로 벤치에 앉은 아비에게 건네며 달래주고 있었다. 아들이 건네준 물을 들이마시며 떨고 있는 몸을 진정하려 호흡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토리엘은 그런 안타까운 사내를 보며 여러 감정을 담긴 눈빛을 뿜어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가고 싶어 발을 떼어 걸어가려 해도 바닥에 다시 붙이고, 손을 뻗어 안으려고 해도 다시 손을 주머니에 넣는 둥 반복이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다시 다가가는 것을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해서였다.

 

.....”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이리저리 못하는 그녀를 보고 곁에 다가온 뼈 친구.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래요, 토리엘? 뼈를 못 찾은 강아지 마냥 가만히 있지 못하네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만의 유머를 꺼내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웃지 않고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더니 그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시선만은 침묵을 지키되 그저 벤치에 앉아 숨을 들이키며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그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가서 얘기를 나눠보는 건 어떠세요? 그렇게 가만히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요.”

 

샌즈는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한 그녀에게 나름대로의 조언을 내뱉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음을 전했다.

 

토리엘, 난 당신이 그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거 알아요. 지금 그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잖아요. 계속 그러고 있다면 시간만 버리는 셈이에요. 그러니 그냥 가서 등이라도 두드리고 오세요.”

 

계속 되는 설득에 그녀는 잠시 남편에게서 눈을 떼고 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매우 불안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둥 혼란스러워했다.

 

샌즈.... 당신이라면 당장 가서 그를 반길 건가요? 반가워서? 사랑해서? 아니면.... 미안해서?”

 

그녀의 질문에 샌즈는 가만히 있었다. 지금 그녀가 내뱉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금방 파악했으니깐.

 

.... 처음 그이를 만나고 나서 정말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걸 눈에 보였어요. 그래서 친구로서와 의사로서의 사명으로 그의 곁에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하고자 함께 해왔죠. 그리고 믿었어요, 그이의 상처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언제나 행복했어요. 행복하게 웃는 그이의 얼굴을 보면 이제 과거에 벗어났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는 점점 엄한 교육에 위험하게 총기 사용까지 가르치기 시작한 거예요. 전 너무 놀란 나머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를 말렸고 끝내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교육을 이어가니 전 아이를 데리고 집에 나왔어요.”

 

자신의 과거를 꺼내며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는 토리엘. 그녀는 제 어리석은 과거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운지 가슴에 주먹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아이를 위해, 그를 위해서라면 곁에 머물면 상처를 치료하고 설득했어야 했어요. 그걸 알아내는데 여러 환자들을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완치 가능한 상처는 없다는 걸. 그이는 부모로서의 보호 본능과 자신보다 더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광분해졌음을 겨우 알게 된 거예요.”

 

토리엘은 여태 자신이 만나 환자들을 하나하나 상기하며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불이 난 집에 눈앞에서 구할 수 있음에도 구하지 못하고 크게 다칠 뿐만이 아닌 가슴에 영원한 상처를 지니게 된 소방원, 집안 문제로 상처를 가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만 자살해버린 죄책감에 술에 빠져 사는 교수, 오발 사격으로 그만 친구를 잊고 만 경찰 등등 모든 사연을 가진 환자를 보고 나서야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녀는 괴로웠고 아팠다. 그리고 그가 쉽게 괜찮아질 것이라는 자만감을 품은 것도 후회하기도 했다.

 

.... 난 너무 어리석었어요. 모든 일엔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어요. 근데 전 그걸 전혀 인지하지 않고 아직 과거에 벗어나지 못한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어요. 그래서... 너무 미안해서... 안타까워서 다가갈 수 없었어요.... 그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여태 그를 무조건 미워하기만 자신이 원망하는 마음과 후회를 토해내기 시작하는 토리엘을 지켜보는 샌즈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그리고 어차피 누군가에겐 진지한 태도를 갖추는 건 어색하기에 가만히 있는 것이야 말로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눈물을 닦아내며 진정하려는 그녀와 아들과 동생에게 위로를 받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는 샌즈. 그는 세참 세상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