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점심, 곧 다가올 밤에 ‘할로윈’ 날를 맞이하기 위해 마트에 갔다 온 염소 모자. 아들은 먼저 차에서 내리고 짐을 양팔에 한가득 짊어 현관으로 걸어가고, 어미는 아들이 차에 내렸음을 확인하고 집 창고에 조심히 차를 집어넣고 있었다. 아스리엘은 아슬아슬 양손에 올려진 짐이 떨어지지 않게 손가락으로 도어락에 갖다 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차에 이미 잠금이 풀린 현관문을 보고 의아했다.
처음 그는 자신이 급하게 나가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인 게 아닌가 하여 넘어가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현관문 위에 자동으로 문이 닫히게 금 고정되게 금 설치되어 절대 안 닫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도어락에 뭔가 문지른 표식은 물론 해체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럼 설마 도둑이 든 게 아닌지 하여 잔뜩 긴장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땀이 나온 발이 들러붙지 않고 소리도 일어서지 않게 재빠르게 주방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았다. 현관에서 짐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창고에 주차하고 있을 어미가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들어가다가 봉변을 당하면 안 되니, 그전에 자신이 빨리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싸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대학 졸업생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행동하는지 남들이 보면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아스리엘은 의외로 힘은 물론 싸움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친부의 교육으로 인해 기초적인 자세는 갖춰져 있었으며 또 부전자전답게 근력도 상당하여 웬만한 괴한쯤은 가볍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대학 입학 초기 시절에 얼떨결로 운동 동아리에 들어가고 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집에 들어와 더 깜짝 놀라게 되기 전에 서둘러 집안에 들어온 괴한을 찾아내고자 거실로 나와 발소리를 죽여가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아스리엘. 하지만 희안하게도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 물건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고, 바닥도 깨끗했으며 무엇보다 정말로 누군가가 들어왔는지 의문일 정도로 고요했다. 문을 닫으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차단되어 잘 들리지 않지만 대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잘 들리곤 했다. 하지만 괴한이 들어온 거 치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닌가 하여 주방에 놓아둔 짐을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거실 벽 외출 옷장 문에 딱 봐도 누군가가 급하게 닫아버려 옷 소매가 낀 것을 본 아스리엘은 곧장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래, 도어락은 평소 신경 쓰지 않아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마트에 가기 전, 옷장은 제가 똑바로 닫은 것은 확인했었다. 하지만 지금 옷장 문에서 소매가 끼어있었다. 그렇다면 제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한 그는 지나가는 파리도 모르게 현관에 걸어놓았던 우산을 조심히 들어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걸어갔다.
겁도 없이 저희 집에 침입한 자신감은 인정하나 그게 목숨을 단명시킨다는 것을 전혀 모르니 어리석은 도둑이었다. 아스리엘은 한 손으로 옷장 손잡이를 살며시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우산을 꽉 잡아 머리를 후려칠 자세를 잡았다. 숨을 크게 마시면서 넘어지지 않게 다리에 힘을 주고, 눈을 옷장 안으로 시선 고정하고 그대로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우산을 쥐고 있던 손을 번쩍 들어내리 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안을 가득 채우건 모자의 외출복뿐이었고 그 외엔 각종 상자나 약병들만 있을 뿐이었다. 안에 아무도 없자 크게 당황한 아스리엘은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으로 옷들을 옆으로 치우며 안을 확인해보았으나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옷장 앞에 우산을 들고 뻘줌이 서 있으니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굵어 버렸다. 혼자 TV 쇼에 나오는 탐정처럼 뭐하는 짓인지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잠시 후, 아직 여전히 익숙하지 않는 집 창고 주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토리엘은 웬 이상한 자세를 잡아 우산을 들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입을 열었다.
“아스리엘? 왜 그러고 있니? 우산도 들고 있고.”
주방에 걸어가다 아들이 이상한 자세를 잡고 있으니 당연히 눈에 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아스리엘은 몸을 버벅거리며 우산을 내려놓고 옷장을 서둘러 닫으며 자신의 어미를 쳐다보았지만, 눈은 아래로 살며시 떨어트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 누가 집 안에 들어온 것 같아서.... 확인하다가...”
“그랬다면 방범 장치가 올렸을 거 아니니? 게다가 경찰에게도 연락이 왔을 텐데 그런 조짐이 없었잖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짐 정리하자. 요새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구나.”
“그... 그렇겠죠? 제가 요새 좀 예민해진 것 같아요.... 하긴.... 엄마 말씀대로 방범 시스템이 있는데 누가 들어왔더라면 바로 신호가 왔을 텐데 말이죠....”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한번 명상을 해보렴. 명상이 복잡해진 마음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니깐.”
머리를 긁적거리며 발을 움직이는 아스리엘. 그는 주방에 걸어가 짐을 정리하려는 어미를 도우려고 다가가고 있던 차에.
“잡았다!!!”
하며 옷장 옆 계단에서 내려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나타난 아스고어. 생각지도 못한 그의 등장에 아들은 물론이고 주방에 서있던 그녀도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넌 방금 죽은 거란다, 아스리엘. 흔적은 찾은 건 용하나, 기척을 느끼는 건 여전히 어색하구나, 아스리엘. 내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거로 기억하는데. 방심했다간 목숨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임을 아직도 이해 못 하는 거냐.”
계단에서 서있었던 그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살펴보자 갑작스런 등장으로 말을 잊어버린 아들 대신에 토리엘이 그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예요? 분명 문을 제대로 잠갔고 방범장치도 설치했는데?”
“도어락같은 건 기계를 다룰 줄 안다면 해체하는 건 금방이요. 그리고 지금 어떻게 들어왔냐가 중요한 게 아니오. 왜 창문에 철망을 설치하지 않았소? 게다가 방탄유리도 아닌 평범한 유리라니. 대체 생각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창문과 바깥을 전부 살펴본 아스고어는 불안한 듯 눈빛이 매우 사납고 거칠게 움직이고 있으며 하루 못 잔 것 같이 얼굴이 말라 보였다.
“당신...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집에 침입하지 않나, 잔소리도 하지 않나. 대체 왜 그러는지 설명을.”
“‘놈’이 탈출했소. 어젯밤 ‘놈’을 이송했던 버스가 뒤집혀지는 바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생겼소. 어서 준비를 해야 하오. 그렇지 않다간 ‘놈’에게 당하고 말 것이요.”
알 수 없는 대답을 꺼내며 다시 계단에 올라갔다가 무언가를 가지고 내려오는 그는 거실로 뛰어가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토리엘은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흥분해진 그를 보며 좀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다 옷장에 가만히 선 아들이 휴대폰을 자신에게 보여주려는 것을 보았다.
“엄마.... 이거...”
아들이 가리키는 것을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보니 눈이 절로 커지고 말았다. 30년 전의 최악의 살인마가 탑승했던 버스는 뒤집혀 졌고, ‘그’는 사라진 지 벌써 몇 시간 째. 그리고 그를 조사했던 두 기자는 오늘 아침 도시 외곽에 있던 식당 화장실에서 이미 사망한 채로 발견. 토리엘은 그 기사를 보고 잠시 겁에 질렸지만, 지금 거실 탁자에서 두툼한 무언가가 내려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또 한 번 숨이 멈출 뻔한 것 같았다.
지금 아스고어는 가방에서 각종 총기들을 조심히 꺼내며 장전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아스고어.... 그거 설마?”
“놈이 다시 나타난 이상, 그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하오. 다들 무조건 권총 하나쯤은 소지하시오. 그래야만 적어도 놈에게서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
빛바랜 가방에서 모든 총기를 다 꺼낸 아스고어는 그중 세련되어 보이는 두 권총을 하나를 들어 곧장 아들에게 다가가 건네주었다.
“그 권총은 매끄럽게 장전하는 점과 탄창이 걸리지 않는 점이 포인트이니 네가 소지를 하거라. 오랫동안 사격 연습을 안 한 너라도 그 권총이라면 무리는 없이 잘 조종을 할 수 있을 거다.”
백색의 권총 한 종을 아들에게 건네주고는 바로 자신을 쳐다보며 투벅투벅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는 토리엘. 그녀는 지금 아들에게 총을 건네는 모습을 보자, 과거 똑같이 아들에게 사격과 혹한 훈련을 시킨 것이 떠올라 그 날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제게 다가오는 그의 얼굴은 분노와 다짐 그리고 공포가 설려 있음을 보았다.
맑고 투명한 유리그릇 같은 눈이지만 그 안의 내용물이 텅텅 비어있음에 온통 금투성이을 금방 알아보자 가슴 속에 차오르는 분노가 사라지고 동정심과 안타까움이 대시 채워지고 있었다.
“당신은.... 이거 받으시오.... 가볍고 빠른 사격이 우수하기에 잠깐 연습하면 당신도 다루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거요.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놈이 다가올 때 겨누고 바로 발사해야 하오.”
“아스고어....”
“그리고 혹시 모르니 이 주사기도 넣어두고 다니시오. 만일...하나,,, 만일 하나, 놈에게 잡힌다면 이 주사기를 놈의 목이라든지 손이라든지... 아니, 신체 어디든 놓는다면 곧바로 기절하고 말 것이요. 그러면 재빨리 도망쳐야 하오.”
“아스고어...”
그녀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다듯이 계속해서 자신의 말만 꺼내는 아스고어. ‘그’가 나왔다는 소식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려온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과연 자신이 그걸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문과 빗물에 젖어오는 것 같은 공포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젠 과거의 일을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되다는 강박감이 그의 머리를 대다수 자리 잡았다.
“아스고어.”
“놈을 잡을 때까지만 여기에 남아있겠소. 철조망을 설치하고 집 주변과 안에 감시 카메라도 설치해야 하오. ....알고 있소. 지금 내 말이 얼마나 어이없고 기가 찼다는 걸.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놈에게서 안전해질 수 있소. 내가 불편하다는 거 알지만 그때까지만 여기에.”
“아스고어!”
아내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 아스고어. 그는 지금 자신을 쳐다보며 눈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의 손에 쥐고 있는 권총과 주사기를 받아낸 다음 그걸 옆 서랍장 위에 내려놓고 다시 시선을 마주치면서 그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아스고어, 난 당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요. 그래요, 예전의 일이 다시 벌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걸 제가 모르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젠 ‘그’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퍼졌고 곧 경찰에서 방도를 생각해낼 거예요. 그리고 또 거리에 순찰하면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바로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게다가 오늘 할로윈 축제에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당당히 제 정체를 드러냈겠어요? 그러니 아스고어, 조금이라도 진정하세요. 네?”
침착한 목소리로 광분해진 그를 달래는 토리엘. 그녀는 여태 그의 상처를 쉽게 고쳐질 것이라고 여긴 자신의 행동을 이젠 되돌리고자 하였다. 그날 그의 행동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화가 나기만 하여 나가버린 그때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을 아스고어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놈’은 정말 신출귀몰(神出鬼沒)한 놈이요. 여럿이 찾아다닌다 해도 ‘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악마가 아니오.... 놈은 어둠 속에서 우리의 예상을 뒤덮어 버리는 그런 잔악무도한.”
“알아요, 알고 있고 말고요. 하지만 30년이 지났어요. 30년 동안 병원에 꼼짝없이 갇히다가 탈출한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 일지도 몰라요. 당신 말대로 지금도 끔찍한 괴물일지 몰라도 30년 동안의 세월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면 당신은 물론 경찰들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예요. 예전처럼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스고어. 괜찮을 거예요.”
다정히 말하며 작게 웃는 그녀의 웃음에 아스고어는 매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런 단순한 악마가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썩기는커녕 점점 단단해지고 굵어지는 나무와 같은 놈이라 말이야. 하지만 그녀의 위로가 머릿속에 자라는 그의 위험성을 지워주고 정말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스고어는 처음 그런 생각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자 곧 제가 대체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냐며 속으로 저를 비웃었지만, 그녀의 위로를 받는 순간에 이미 물을 뿌려도 잠재워지지 않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아침 소식을 듣고 달아오른 감정은 재가 되어가고, 그 재는 이젠 다시 자랄 땅의 양식으로 되어가듯이 서서히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자신이 그립고 원했던 것을 다시 받게 되니 머릿속을 덕지덕지 엉켜 있던 기름이 나가고 이젠 깨끗한 물이 들어와 진 것처럼 맑아진 것 같은 쾌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얼떨결에 동의하는 그의 의사가 보이자 토리엘은 기뻐하는 표정으로 손으로 그의 뺨을 살며시 만지며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당신, 아직 점심을 안 먹었죠? 보아하니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점심 식사해요. 마침 저희가 장을 보고 온 길이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려 하거든요.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상상도 못 한 아내의 제안에 아스고어는 어쩔 할 줄을 몰라 하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서 있게 되었다. 곧 다가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달려왔는데 의외의 위로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니 그는 살짝 당황했는지 아까보다 굳어있던 몸이 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자 토리엘은 손바닥을 치며 식사 준비를 알렸다.
“자, 당신도 동의했으니 이제 시작해요. 아스리엘, 우선 장을 보고 온 재료를 정리해주겠니? 엄만 미리 손질한 재료를 다듬어서 바비큐 준비를 하마.”
토리엘은 아들에게 부탁하자, 멍을 때리고 있었던 아스리엘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앗. 네네 알았어요, 엄마.”
“좋아, 그럼 당신은 우선 거실 탁자에 있는 총들을 먼저 정리를 해주고 도와주겠어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보다가 놀래서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라요.”
아내의 충고에 허덕거리는 아스고어는 곧장 거실의 탁자에 있는 총기를 치우고자 달려갔다. 아스고어는 꿈에도 꾸지 못한 일에 무척 당황하여 지금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게 아닌지 해 믿지 못했지만, 탁자에 올려진 총들의 차가운 촉감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자 이제야 자신이 현실에 있음을 짐작했다. 그는 가슴에 벅차오르는 행복에 심장이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뛰기 시작했다. 겨우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고통의 눈물이 아닌 행복의 눈물를 흐리게 되었다. 상처를 숨기기 위한 미소가 아닌 행복해서 지는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는 숨을 쉬게 되었다. 이제야 겨우 말이다.
“여기입니다, ‘부기맨’이 탑승했던 버스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다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는데 이 사람만은 팔에 골절하고 뇌진탕 이외에 다른 건 다 멀쩡합니다.”
의사의 안내를 받아 어느 환자실로 걸어가는 여 경찰 언다인. 사건 현장에서 보고 받고 곧장 찾아온 그녀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무심한 듯 몇 마디를 뱉어냈다.
“우선 자신을 묶고 있었던 수갑을 억지로 푼 다음에 지켜보고 있던 감시원을 공격한 다음에 운전자도 건드린 탓에 버스가 탈선하고 말았고, 그 영향으로 공격받기 전에 기절해서 죽은 것처럼 보여서 건드리지 않았거나.”
의사의 안내에 따라 하얀 방문 안에 도착한 그녀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놓고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를 도와줘서 건드리지 않았던지 말이지.”
“네?”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의사는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언다인은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 현재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환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언다인.”
“앗, 알피스. 지금 상태가 어때?”
사건만 아니었음 당장 꼭 안아서 빙빙 둘아 폭풍 키스를 나누고 싶었던 둘이었지만, 현재 최악의 살인마가 탈출한 시기인지라 모두 각자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다행히 머리엔 큰 부상을 입지 않아서 괜찮아. 좀 쉬면 금방 정신을 차릴 거야.”
“그래? 그거 다행이네. 여러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말이야.”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며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언다인.그녀는 지금 매우 심란스러웠다. 30년 전의 사건을 맡았었던 존경하는 스승이자 선임이었던 거슨 형사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왔던지라 ‘그’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대략 알게 되었다. 아니, 사건 현장과 탈선한 도로를 보고 온 길이라 이미 그가 인면피를 뒤집어쓴 악마임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병원에서 그를 튼튼한 수갑으로 채워놨다고 몇 번이고 듣고 또 들었다. 행동이 거친 환자들을 묶어놓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수갑인지라 아무리 ‘그’라도 쉽게 벗겨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풀고 의사를 제외한 모두를 죽이고 탈출했다. 의사를 제외하고.
“난 이자가 너무 신경쓰여. 어떻게 ‘그’에게 살아남은 거지? ‘그녀석’이라면 절대 살려두지 않을 텐데 말이지.”
연인의 의심에 알피스도 역시 의심이 가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옆에 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도 의심이 들어. 여태 죽은 환자들이나 감시원, 운전자의 상태에 비해 이 사람은 너무 깨끗해. 더구나 이 사람은 ‘부기맨’을 조사했던 그 가스터 박사의 후임이라 말이야? 그러면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사람이 이렇게 대비를 제대로 안 했을 리가 없어.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은.”
“흠....”
연인의 말장구에 언다인은 매우 심란스러워 열을 받은 대로 받은 머리를 물속에 넣고 싶었다. 오늘 밤 할로윈 축제가 열리는 데 끔찍한 살인마가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는 생각에 가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멈추기엔 이미 모두가 준비하고 기다려온 축제를 막을 수 없었고 설마 자신들의 마을에 오겠냐는 그런 무심함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다가 예전 선임이 끝도 없이 꺼냈던 이야기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돌아다녔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파오기 시작했다.
“우선 언다인, 축제는 취소할 수 없어도 우선 주민들에게 경고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즐겁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곧 다칠지도 모를 위험을 미리 알게 해서 조심하게 해야 돼.”
“....우선 문자로 보내서 미리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해야지. 괜히 뒷골목에 들어가다가 마주치면 큰일나니깐. 순찰도 강화시켜야 겠어. 어디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게 최선이겠지.”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병원에 있는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릴게. 환자들을 지키려면 그래야 하니깐.”
작게 웃으며 연인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 다시 병실을 나가는 알피스. 그녀의 부드러운 위로에 진통이 잦았던 머리가 금방 풀어지는 것 같아 다시 편안한 얼굴로 돌아온 언다인은 다시 누워있는 ‘그’의 담당의를 쳐다보며 생각하였다.
우선 ‘놈’의 행선은 알 수 없어 무작정 대처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오늘 밤 절대 경계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게 준비를 마치기로 했다. 자리에 일어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심이 설린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는 언다인은 곧 시선을 떼고 병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움찔.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에 고갤 돌려 침대를 확인하는 언다인. 지금 의사가 의식을 되찾았는지 온몸을 뒤적이자 바로 문을 열어 의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뜨자 언다인은 기쁘건지 바쁘건지 구분을 할 수 않았다. 그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되어서 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그가 다시 눈을 감기 전에 모든 조치를 마쳐 일으켜야 했다. 이건 지금에게 있어 절대 둘도 없는 기회였다.